2011 피카소와 모던 아트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피카소와 모던 아트 전은 제목과는 달리 피카소의 작품은 아주 적었다.
어짜피 Paris에서 피카소미술관도 다녀 왔던터라 피카소보다는 유럽 모더니즘 대표작가에 욕심이 났다.
많은 작품구성에 많은 인파로 사람에 치여 급 지치기는 했는데 잘 다녀온 듯 싶다. 헌데 도록 이외에는 작품에 딸린 소품을 구매하는데 한계가 있어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전시이기도 하다...
사진촬영도 금지 되었던 터라 오랜만에 초등학생처럼 메모하며 구경했던 전시 ^^

시각적인 감성없이는 빛도 없으며 또한 움직임도 없다. 자연 속에서의 빛은, 색상들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 로베르 들로네
=> 추가설명(Robert Delaunay)
시각적인 것 뿐만 아닌 청각적인 소리도 음악도 이와 같은 듯 싶다.



Lot 132, "Air, fer and eau, etude," by Robert Delaunay, gouache over pencil on paper laid down on panel, 19 5/8 by 33 5/8 inches, 1937

그림출처 : thecityreview

호안 미로의 변신

샤갈의 잠자는 여인과 꽃 / 야곱의 꿈


끌로드 모네의 장미정원이 있는 집

에리히 헤켈의 나무 옆에 서 있는 여인


오토 뮐러 물가의 벗은 여인들 / 들판의 세 소녀

오스카 코코슈가의 누워있는 누드 / 과일과 새가 있는 정물

에밀놀데의 강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컵을 든 소녀 / 실내의 두 나부

이리히 헤켈의 누워있는 인물


아우구스트마케의 테게른 호수의 요트 놀이

프란티세크 쿠프카의 상승

로베르 들로네의 미의 세 여신

나탈리아 곤차로바의 공작새

요하네스 이텐의 빛의 서클


폴시냑의 베니스의 핑크 빛 구름


프란츠 마르크 의 잠자는 양기치 소녀


폴 세잔의 노르망디 농장

등 많은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제목과 작가만이라도 적어 두웠다. 하나씩 찾아 보고 살 좀 붙여 봐야겠다. ^^ (맘에 드는 작품을 볼 때면 나도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갖을 수 있겠지? 꼭 마주하고 사는 날이 오겠지 하며 그날을 꿈꾸어 본다.)

요즘은 정말 주말에 전시회 가는 건 좀 미친짓 같기도 하다. 이제는 평일 관람도 가능해 졌으니 시도해 봐야 겠다. ^^ (생각만으로 기쁘다 ㅋㅋ)
전시관람이 여유롭게 이루어 져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물밀려 가듯 어수선한 상황이 발생된다.
그래도 남녀커플이 전시회를 둘러보며 작품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을 때는 나의 바램인지 얼마든지 나의 아량이 넓어지지만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보는 커플을 보고 있노라면 왜 같이 왔을가 싶기도 하고... 이 또한 나의 오지랖, 나의 편견 일런지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이 또한 내가 보고픈대로 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습관이겠지, 익숙한 것에는 그만 열중하고 좀 더 다양하게 접해 보는 것이 우선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편식 없도록...

창조가 있기 전에 먼저 파괴가 있어야 한다. 고상한 취향이란 얼마나 불괘한 것인가!
그 취향이란 창의력의 적이다. - 피카소 파블로

참고 : 독일의 표현주의 (클릭)

출처 : 네이버, 피카소와 모던 아트 홈페이지

우리는 국악을 얼마나 알고 있나

국립국악원에서 발간하는 '국악누리' 이번 호에서 눈에 확 뜨인 글이 있었다. 이윤주 님(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이 쓴 '국악에 다가서기 첫걸음- 찾아보세요'라는 제목의 원고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다음은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인 문성모 목사가 독일의 한인교회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에 관한 강연을 할 때 '한국적인 자각을 위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서양음악과 국악을 비교하는 문제에 사용한 질문입니다.

1. 바하를 아십니까? 우륵을 아십니까?

2. 운명 교향곡을 아십니까? 수제천을 아십니까?

3. 소나타 형식을 아십니까? 도드리 형식을 아십니까?

4. 바이올린은 몇 줄입니까? 거문고는 몇 줄입니까?

5. 오선보를 아십니까? 정간보를 아십니까?

6. 평균율은 무엇입니까? 삼분손익법이 무엇입니까?

7. 도.레.미.파.솔이 무엇입니까? 황.태.중.임.남이 무엇입니까?

8. 장조와 단조는 무엇입니까? 평조와 계면조는 무엇입니까?

9. 레시타티브는 무엇입니까? 아니리는 무엇입니까?

10. 고전파. 낭만파는 무엇입니까? 아악. 당악. 향악은 무엇입니까?

11. 현악4중주의 악기편성은? 삼현육각의 악기편성은?

12. 겨울나그네를 아십니까? 치화평을 아십니까?

13. 전람회의 그림을 아십니까? 영산회상을 아십니까?

14. 가곡 보리수의 가사를 아십니까? 가곡 초수대엽의 가사를 아십니까?

15. 카루소를 아십니까? 임방울을 아십니까?

16. 로렐라이 언덕을 불러보십시오. 진도 아리랑을 불러보십시오.

17. 당신은 독일 사람입니까?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문 목사는 5분의 시간을 주고 국악에 대한 문제 중 3개 이상 정답을 맞히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겠다고 했고, 음악애호가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양 음악에 관한 질문에는 거의 정답을 맞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독일 사람입니까?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문제를 제외하고는 국악에 대해서는 정답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나는 국악을 세 문제 이상 맞히긴 했으나, 명색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서 결코 자랑할 수준은 아니다. 질문을 읽어 내려가며 새삼 깨달았다.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글쓴이는 단지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접근은 그 자체로 부담될 수 있으니, '음악도 음식처럼, 편식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여러 장르의 것을 섭취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글을 읽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영국 연수 시절 알고 지냈던 친구(프랑스인이다)가 지난해 여름 한국에 놀러 왔다. 영국에 있을 때, 우연히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좋았다고 해서 내가 갖고 있던 황병기 음반을 선물했더니 굉장히 기뻐했던 친구다. 청계천에 같이 놀러 갔는데, 한참 걷다 보니 어디선가 풍악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근처에 무슨 문화행사가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는데, 정조대왕의 의전행렬을 그린 '정조반차도'가 벽화로 그려진 구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였다.

정조반차도는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과 현릉원을 다녀오는 의전 행렬을 그린 것이다. '이 음악이 뭐냐'고 묻는 친구에게 '아마도 궁중의 행사음악인 것 같다'고 대답해 줬다. 친구는 크게 흥미를 보이며 이 음악을 휴대전화로 녹음해 갔다. 주변 소음 때문에 들을 만하게 녹음되지는 못했지만.

이 친구가 영국에 돌아간 후, 나는 음반을 하나 사서 보내줬다. 영국인 음악학자 존 레비(1910~1976)가 1964년 한국에서 녹음했던 한국 전통음악 컬렉션 가운데 한 장, 'Court Music(궁중음악)'이라는 제목이 붙은 음반이었다. 영문 해설이 잘 돼 있는 것 같아 골랐던 음반이다. 지난해 복원 발매된 명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나는 이 음반을 들어보지 않았다. 친구는 요즘 열심히 이 음반을 듣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청계천에서 들었던 음악은 취타-대취타-함녕지곡이었다. 취타와 대취타는 관악기와 타악기로 연주되는 행진음악이며 '편안함이 두루 미친다'는 뜻의 관악합주곡 '함녕지곡'은 관악영산회상 8곡 가운데 일부를 연주할 때 불리는 이름이다. 궁중에서 많이 사용된 음악이니, 내가 '궁중음악' 음반을 사 보낸 건 헛짚은 건 아니다. 하지만 존 레비 컬렉션에는 '관악 영산회상'이 따로 나와있으니, 청계천에서 들었던 그 음악을 다시 들려주려면 '관악 영산회상' 음반을 샀어야 했다.

이윤주 님의 글을 읽으면서 존 레비 컬렉션, 외국인 친구한테만 사 줄 것이 아니라, 나야말로 사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궁중음악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윤주 님이 글에서 추천한 초심자용 국악 음반을 소개한다. 본격적 국악이라기보다는 크로스오버에 가까운 음반들이 많다. 이 중에는 내가 들어본 음반들이 꽤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문화부 기자,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게 많아지는 느낌이다.

슬기둥 「캐롤」, 공명 「통해야」, 숙명가야금연주단 「베스트 셀렉션 2006」, 그림 「아침풍경」김용우 「소리꾼 김용우 10년지기」, 정수년 「공(空)」, 양방언 「Pan-o-rama」


최종편집 : 2011-01-13 17:01 글쓴이 SBS 김수현기자

출처 : SBSnews

낮과 밤 - 홍상수

홍상수 이젠 찌질남을 넘어 찌질녀까지 손을 대는 구나...
나 또한 찌질녀는 아닌지, 당신 또한 찌질남은 아닌지...
낮과 밤,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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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터에 나온 앨범 Fela 'Ransome' Kuti - Open & Close (1971)
나이지리아의 음악가. 미국의 블루스·재즈·펑크를 전통적인 요루바 음악과 융합시켜 아프로비트라는 아프리카풍의 현대음악을 만들어냈다. 급진적 음악가이자 정치가로서 1960년대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중 하나이다.

본명 펠라 란소메 쿠티
별칭 흑인 대통령
국적 나이지리아
활동분야 음악
출생지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주요작품 《업사이드 다운》 《멍키 바나나》
주요업적 아프로비트 음악 창시

미국의 블루스·재즈·펑크를 전통적인 요루바 음악과 융합시켜 아프로비트(afro-beat)라는 아프리카풍의 현대음악을 만들어냈다. 본명은 펠라 란소메 쿠티였으나 이 이름이 식민주의적이라고 거부하여 펠라 안티쿨라포 쿠티로 개명하였는데, 이는 ‘부적으로 죽음을 통제하는 사냥꾼’이라는 뜻이다. 또 뒤에는 ‘흑인 대통령(Black President)’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1938년 나이지리아 라고스 북쪽의 아베오쿠타에서 목사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운동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펠라는 어린 시절 피아노와 타악기 주법을 배웠으며, 1958년 영국 런던으로 의학을 공부하러 떠났다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유럽 고전음악을 공부하는 데 취미를 못 느껴 학교를 그만두고 ‘쿨라 로비토스 Koola Lobitos’라는 밴드를 조직한 뒤 연주활동을 하였다. 이때 펠라는 자신의 음악을 아프로비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말 펠라는 ‘크림(Cream)’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라는 전설적 록밴드의 드러머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와 만나면서 인간적·음악적으로 교류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산드라 이시도어(Sandra Isidore)와 만났다. 흑인 급진단체 블랙팬더당과 관련을 맺고 있던 이시도어는 펠라에게 맬컴엑스(Malcolm X)와 엘드리지 클리버(Eldrige Cleaver) 등의 저작을 소개하는 등 흑인 내셔널리즘과 아프리카중심주의를 접하게 해주었다. 밴드의 이름을 ‘나이지리아 70(Nigeria 70)’으로 바꾸고 자신의 성(姓)을 ‘안티쿨라포’로 개명한 것도 이시도어와 만난 뒤의 일이었다.

1970년 나이지리아에 정착한 펠라는 ‘칼라쿠타 공화국(Kalakuta Republic)’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와 동시에 밴드의 이름을 다시 ‘아프리카 70(Afrika 70)’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소울과 펑크에 요루바 음악의 동태적 리듬을 결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펠라는 주로 영어로 노래불렀지만 억양이 독특하고 요루바어가 섞여 있어서 미국의 흑인음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는 뚜렷한 멜로디를 노래하기보다는 주술을 외우듯 툭툭 내뱉는 스타일로 노래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펠라는 자신의 음악을 나이지리아 군사정권의 억압에 항의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이후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노래는 실업자와 하층민, 피억압 민중의 감정을 교묘하게 흔들어 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와 더불어 군사정부의 탄압도 시작되었다. 1973년부터 정부의 감시를 받던 펠라는 1974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50명의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77년에는 1,000명의 군인들이 펠라의 집을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동료와 가족들을 폭행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펠라는 사건 직후 잠시 가나로 망명했다가 돌아와 1979년 국민운동(Movement of the People)이라는 정당을 결성하여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섰지만 실패하였다. 그뒤 1980년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음악 활동에도 자유가 보장되었다. 이 시기에 밴드는 ‘이집트 80’으로 개명하였는데, 이때 발표된 《흑인 대통령 Black President》(1981)과 《Original Sufferhead》(1984) 등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시장에도 소개되면서 펠라의 최고작이 되었다. 이 작품들에서 펠라의 음악은 아프리카 음악도, 아메리카 음악도 아닌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1983년 나이지리아에서 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1984년 펠라는 라고스 공항에서 외화 도피 사건으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국제사면위원회의 노력으로 18개월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뒤에도 펠라는 음악활동을 계속해 나갔으나, 이러한 정치적 탄압과 더불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결코, 결코 멈추지 말고 싸워라(never, never stop fighting)’라는 감옥에서의 선언과 ‘음악은 미래의 무기(Music is the Weapon of the Future)’라는 평소의 신조를 실천해 나갔다. 펠라는 1997년 군부에 의해 마리화나 소지 및 복용으로 연행되어 일주일 정도 구속된 뒤 석방되자마자 죽었다.

그는 공적 생활에서는 존중받는 급진적 음악인이자 정치인이었지만, 사생활에서는 가부장주의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인 가장이었다. 28명의 부인과 결혼하였고 나중에는 그들 모두와 이혼하였으며, 아들인 페미 쿠티에게 밴드를 상속하기도 하였다.

주요작품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토지를 수용하려는 정부를 비꼬는 《천천히 다녀라 Go Slow》(1975), 군인과 정치인들을 풍자한 《좀비 Zombie》(1977), 정부의 난폭함과 관료의 무능을 꼬집은 《업사이드 다운 Upside Down》 등을 비롯하여 《멍키 바나나 Monkey Banana》 《국적 없는 짐승들 Beasts of No Nation》 《Everything Scatter》 등의 사회적 저항정신을 엿볼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출처 : 두산 엔사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