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재현 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에 놓여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은, 3차원적 대상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이 “재현”하는, 새롭고 근대적인 “기술”의 하나로서 서구 미술을 받아들였다. 르네상스적 원근법이 적용된 풍경이나, 세밀하게 묘사된 초상화들이 그러한 서구에의 충격을 반영한다. 당시 “리얼리즘”은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시각적 경험을 평면에 옮기는 기술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은, 자국의 미술사적 전통과 서구의 기법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다양한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다카하시 유이치, 일본, <오이란(花魁)>, 1872년, 캔버스에 유채, 77 x 55cm,도쿄예술대학미술관 소장
Takahashi Yuichi, Japan, Courtesan, 1872, Oil on canvas, 77 x 55cm, Collection of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Japan
일본은 19세기말 메이지 유신 시기 모든 분야에 있어 서구 문물을 배우기 위한 체계적인 변화를 꾀하였고, 미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무렵 다카하시 유이치는, 일본에 초빙된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폰타네지 등에게서 유화를 배우기도 했지만, 거의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신의 기법을 찾아냈습니다. 이 작품은 유곽의 위계 높은 기생 “오이란”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대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 없이, 나이가 든 기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기록”하는 일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집요한 태도는, 전통회화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리얼리즘”적 시도로, 서양화에 대한 당대의 열광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는,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부분의 묘사를 위해 연백(鉛白)을 덧칠하는 등 전통 기법을 접목하기도 했습니다.

응우옌기어찌, 베트남, <베트남 풍경>, 1940년, 보드에 옻칠, 159 x 119cm, 싱가포르국가유산위원회 소장
Nguyen Gia Tri, Vietnam, Landscape of Vietnam, 1940, Lacquer on panel, 159 x 119cm, Collection of National Heritage Board, Singapore
응우옌기어찌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1925년 설립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재학 중 휴학을 하고 독립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타르디유(Victor Tardieu) 등 유명한 프랑스인 화가들에 의해 교육된 이 학교는 비록 유럽의 인상주의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비단이나 옻칠 등 베트남 고유의 매체를 이용한 베트남식 양식을 개발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전통 옻칠기법을 활용한 이 작품은, 원경의 산과 근경의 식물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배치한 풍경화입니다. 흑, 적, 금색의 전통적 색채를 기본으로 하여, 여러 개의 색층을 겹쳐 제작한 옻칠화이지만, 화면 구성과 원근법은 다분히 서양의 재현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서양 모더니즘의 독특한 결합방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배운성, 한국, <가족도>, 1930-35년, 캔버스에 유채, 140 x 200cm, 전창곤 소장
Pai Un-soung, Korea, A Big Family, 1930-35, Oil on canvas, 140 x 200cm, Collection of Jeon Chang Gon, Korea
일본 식민지 시대 서울에서 한 갑부 집안의 집사로 일했던 배운성은, 그 집안 아들의 유학 길을 동반하는 목적으로 1919년 일본, 1922년 독일을 가게 됩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화와 판화를 공부하고, 1937년 이후 파리에서 활동했던 그는, 유럽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1940년 귀국한 후 한국전쟁 중 월북한 그는,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한국 근대기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독일 체류 중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한국에서 주인으로 모셨던 집안의 대가족을 소상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집사 출신인 작가 자신의 모습도 화면 제일 왼쪽에서 작품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사진을 보고 그린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사진의 기능을 대체할 목적으로 회화가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철저하게 기록적인 성격이 작품의 사실주의적 태도를 반영하는 한편,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채색하는 기법은 전통 회화의 백묘법을 연상시키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주제 2: The Rural as an Attitude and Metaphor
은유와 태도로서의 향토
20세기 전반,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민족”에 대한 인식이 자라났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자국 민족의 오랜 삶의 터전인 농촌 생활의 묘사는 일종의 향수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평화롭고 아름답게 묘사되는 “향토”의 이상화된 이미지는, 한편으로 현실도피의 도구가 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터잡고 있는 주변의 자연과 환경에 대해 진정 어린 관심은, 어떠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자발적인 민족의식을 찾아가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고투를 읽게 한다. 이는 이 주제가 오랫동안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유행하고 사랑 받는 근거가 된다.

아사이 추, 일본, <농부귀가>, 1887년, 캔버스에 유채, 135.5 x 98.5cm, 히로시마미술관 소장
Asai Chu, Japan, Farmer Returning to Home, 1887, Oil on canvas, 135.5 x 98.5cm, Collection of Hiroshima Museum of Art, Japan
메이지 시대의 서양화가인 아사이 추는, 공부미술학교에서 이탈리아 교수인 안토니오 폰타네지에게서 서양화법을 배운 적이 있고, 도쿄미술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프랑스로 가서 2년간 체류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일가족(엄마, 아빠, 딸)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농촌의 일상적인 한 순간을 포착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강한 영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이탈리아 화가 폰타네지 또한 바르비종 화파의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농부들의 힘겨운 일상적 순간에, 거의 종교적이라 할만큼의 경건함을 부여했습니다. 한편, 아사이 추는 볏짚을 담은 지게, 주전자, 삼태기와 멱서리 등 농촌생활의 모티프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인성, 한국, <해당화>, 1944년, 캔버스에 유채, 228.5 x 146 cm, 리움 삼성미술관 소장
Lee Inseong, Korea, Sweet Briers, 1944, Oil on canvas, 228.5 x 146 cm, Collection of Leeum, Samsung Museum of Art, Korea
이인성은 대구의 유화가 1세대들의 화실에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워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수상하는 등 어릴 때부터 천재화가로 불렸습니다. 1930년대 초 일본 유학 후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이인성은 한국전쟁기인 1950년 취기로 벌어진 경찰과의 사소한 시비로 총에 맞아 숨진 불운의 화가였습니다. 1944년 마지막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그의 작품 <해당화>는 같은 해에 숨진 만해 한용운의 시 “해당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봄은 지나갔으나 오지 않은 “님”을 기다리며 어찌할 바 없는 애잔한 심사를 그린 한용운의 시와 이인성의 그림은, 식민지 말기 한국 상황을 너무나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피는 해당화, 바다 위 조각배, 평화로이 거니는 말, 나뒹구는 조개 껍질 등은 어딘가를 향한 여인의 표정과 함께 그 무엇에 대한 갈망과 희구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조셋 첸, 싱가포르, <사테 파는 소년> , 1964년, 캔버스에 유채, 135 x 161cm, 싱가포르국가유산위원회 소장
Georgette Chen, Singapore, Satay Boy, 1964, Oil on canvas, 135 x 161cm, Collection of National Heritage Board, Singapore
조셋 첸은 중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유럽에서 수학하면서 일찍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 첫 외교부장관의 아내였으나 남편의 이른 죽음 이후 불운한 삶을 살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오랫동안 싱가포르 난양 미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말레이시아의 지역 음식으로 고기나 해산물을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먹는 꼬치요리인 “사테”를 해변에서 팔고 있는 남자아이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과 지역의 생활을 담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지역주의 경향을 반영합니다.
지금 여기의 우연한 한 순간을 포착한 듯 보이지만, 인물의 배치, 의상, 모자 등의 색채와 패턴은 면밀하게 계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 회화 언어를 완숙하게 소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즈광, 중국, <눈 내리는 밤에 식사 배달하기>, 1959년 종이에 채색,
292 x 120 cm, 광동미술관 소장
Yang Zhiguang, China, Meal Delivery at a Snowing Night,1959, Color on paper, 292 x 120 cm, Collection of Guangdong Museum of Art
양즈광은 중국화가인 가오젠푸(高劍父)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회화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쉬베이홍이 지도하는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서양화의 사실주의적 테크닉을, 중국화 고유의 매체에 적용하여 명성을 얻었고, 1950년대 국화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958년 마오쩌둥이 이끈 대약진운동을 배경으로 제작된 것으로, 근대화 되어가는 농촌의 모습을 주제화한 것입니다. 눈 내리는 밤에도 불을 밝혀가며, 저 멀리 트랙터 일꾼에게 야식을 전달하려는 생산대 여성 일원과 대장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힘든 노동의 현장을 그리면서도 언제나 “긍정성”과 “서정성”을 담아내는, 대 약진기 미술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농촌의 서정적 주제가 급부상하고 중국화의 가치가 부활하는 것도 이 시기 중국미술의 새로운 판도를 반영합니다.
주제 3 : Hail the Worker! 노동자를 환호하다
노동자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미술 주제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시아적 전통에 비추어볼 때 매우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0-40년대의 폭발적인 시기를 중심으로, 거리의 걸인, 노동자, 농민, 일반 민중의 삶에 미술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러한 인식은
제 2차 대전 이후에도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단적인 지점으로까지 나아갔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지식인 계층의 구분 자체를 부정한 채, 노동자 이미지를 영웅화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트루부스 수다르소노, 인도네시아,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 1960년, 캔버스에 유채,
137 x 68cm, 싱가포르국가유산위원회 소장
Trubus Sudarsono, Indonesia, Women with Chicks, 1960, Oil on canvas, 137 x 68cm, Collection of National Heritage Board, Singapore
트루부스는 인도네시아의 민족적 미술경향을 대변하는 수조요노와 함께 민중의 화가(People's Painter) 그룹에서 활동했습니다. 식민지배자의 시선이 아닌, 실제 민중의 언어로 회화를 그려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그는 인도네시아의 토착적 주제에 몰두했습니다. 병아리와 함께 있는 작품 속의 여인은 자바인의 전통의상인 블라우스 케바야(kebaya)를 입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의 친척으로 보이는 다른 여성이 머리를 빗겨주고 있는데, 그녀는 자바 전통의 머리핀인 콘데(konde)를 장식할 머리 매듭을 짓기 위해 오랜 빗질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도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화면 아래 막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암시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여인의 인상적인 눈빛은 일반적인 민중의 소박한 의식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듭니다.

암리타 세르길, 인도, <어머니 인도>, 1935년, 캔버스에 유채, 78x 62.5 cm, 인도국립근대미술관 소장
Amrita Sher-gil, India, Mother India, 1935, Oil on canvas, 78x 62.5 cm, Collection of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India
암리타 세르길은 인도 근대미술사의 전설적인 여성화가로,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1941년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직접 거리에서 그린 사생 스케치를 토대로 보통의 민중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당시 인도화단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작가의 완숙기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사리를 입고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한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 인도의 이미지를 다소 신비주의적인 터치로 처리했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작가는 길에서 마주친 보통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인도를 표상하는 강력한 힘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윈화, 중국, <구리광산의 첨병(采铜尖兵)>, 1971년, 캔버스에 유채, 220 x 201cm, 지그 컬렉션
Wu Yunhua, China, From the Tiger's Mouth, 1971, Oil on canvas, 220 x 201cm, Collection of Uli Sigg
우윈화는 흑룡강성 출신으로, 션양 루쉰 미술 학원와 북경 중앙예술학원을 졸업한 후 유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문화혁명기 광산지역으로 가서 실제로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고 광산에서 광물을 캐는 광부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1966년 시작되어 약 10년간 지속된 중국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시기의 미학적 원칙을 충분히 반영한 대작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그릴 것, 연극 중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묘사할 것, 주인공을 특히 강조하여 영웅화할 것, 인물의 경우 “홍, 광, 량(紅-光-亮)”, 즉 “붉고, 밝고, 빛나도록” 묘사할 것 등의 원칙이 충실하게 지켜졌습니다. 화면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두 주인공은 헌신적으로 노동에 집중하며, 국가의 산업과 미래를 책임지는 영웅의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주제 4 : Impact of War 전쟁과 리얼리즘
아시아의 국가들이 20세기에 직면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현실 중의 하나는 “총력전”으로서의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미술형식으로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하는 중요한 이유를 제공했다. 전쟁 상황을 기록하고, 전후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승전을 기념하고 선전하는 목적을 위해 리얼리즘 회화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시미즈 토시, 일본, <말레이 가교 공병대>, 1944년경, 캔버스에 유채, 159.5 x 129cm,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소장
Shimizu Toshi, Japan, Engineering Corps Constructing a Bridge in Malaya, c 1944, Oil on canvas, 159.5 x 129 cm, Collection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시미즈 토시는 1907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각지를 전전했습니다. 미국 애쉬캔 화파의 대표적 작가인 존 슬론에게서 배웠고, 1927년 이후 일본에 귀국하여 이과전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종군작가로 상하이에 건너갔고, 1945년 장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같은 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1942년 말레이 반도를 종단했던 일본군을 막기 위해 폭파된 다리를 공병대가 단 2일만에 성공적으로 보수하여 진격을 도왔다는 일화가 신문에 대서특필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의 보도사진을 근거로 2년 후인 1944년 육군미술협회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일본군에 협력하는 말레이 현지인들의 모습을 그림 뒤편에 의도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전쟁의 정당성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강인한 근육을 영웅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물속에서 기둥을 지탱하는 병사들의 “고통”에도 밀착하는 태도가 주목을 끕니다.
주제 5: Social Commentary and Criticism
사회 인식과 비판 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하여
20세기 후반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지만, 여전히 식민지적 사회구조의 반복, 정치적 부정,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지식인으로서의 예술가에게 다양한 예술적 화두를 제공했다. 공산주의를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1950-60년대 추상미술이 “제도화”되는 시기를 거친 후, “리얼리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등장했고, 한국,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발언을 예술의 존재 근거로 주장한 “새로운 리얼리즘” 운동이 일어났다.

오윤, 한국, <가족 II>, 1982년, 캔버스에 유채, 131 x 162cm, 개인 소장
Oh Yun, Korea, A Family II, 1982, Oil on canvas, 131 x 162cm, Private Collection, Korea
부산 출신의 작가 오윤은, 1960년대 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시절부터 사회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술운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대의 문학인, 민중운동가 등과 교유하면서 판화, 삽화, 걸개그림 등 대중적이고 보급이 빠른 미술매체를 제작하였고, 현실비판적인 작업들을 남겼습니다. 1986년 40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한국의 민중미술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화가에 속합니다. 그의 작품 <가족>은 빠른 속도로 도시화한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략 일반화된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노 부부는 농촌을 지키고 있지만, 성장한 자녀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서 자장면 배달, 술집 점원, 공사장 인부와 같이 쉽게 뛰어들만한 직업을 택합니다. 무표정하게 관객을 바라보는 가족 구성원들은, 급격한 속도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소통부재의 불균형한 현실을 씁쓸한 기분으로 직면하게 합니다.

이종구, 한국, <속·농자천하지대본>, 1984년, 쌀부대, 170 x 100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Lee Jong-gu, Korea, Sequel-Agriculture Formsthe Basis of the World’s Existence, 1984, Acrylic on rice paper, 170 x 100cm, Seoul Museum of Art, Korea
이종구는 충남 서산시 오지리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했다. 고향 오지리에서 농부로 생활하는 작가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풍요로운 농부”의 선전적인 이미지 대비를 이루면서, 늙고 힘들고 고통에 겨운 “실제”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쌀부대 종이를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에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농업을 권장했던 국가로부터 아버지가 받은 상장들, 힘든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아버지의 편지 등을 콜라주 했다. 작가는 이상화된 농촌의 이미지와 실재하는 농촌의 현실이 지니는 괴리에 대해 지적 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 자체를 재고하도록 이끈다.

끼에띠삭 차논낫, 태국, <잠재의식 #1>, 1980년, 캔버스에 혼합재료, 153 x 100cm, 디사폴 찬시리 소장
Kiettisak Chanonnart, Thailand, Subconscious Mind #1, 1980, Mixed media on canvas, 153 x 100cm, Collection of Dr Disaphol Chansiri
끼에띠삭은 1965년 타이 실파꼰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대 타이의 새로운 미술경향을 반영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이슈와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주제로 한 작업을 남겼습니다. 우울하고 황량한 공간에 놓인 해골, 비명을 지르는 얼굴과 밀폐된 방의 이미지 등이 그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숨막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개인의 불안과 무의식이 주제화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대학시절 경험한 남동생의 의문의 죽음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이차원의 사실적인 묘사와 삼차원의 오브제가 기묘하게 병치되고, 존재와 비 존재의 경계가 모호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닌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결국 무엇이 진정한 “실재”, “리얼리티”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어떠한 객관적인 답변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질문 자체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르몽드 디플로마띠크 초대권으로 잘 다녀왔습니다.

자료 찾다가 들어와서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답글삭제감사합니다! :)